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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가에서 메모한 2026년 8월의 문장들입니다.
이번 달은 총 6개의 문장을 4곳의 출처에서 모았습니다.
📖 상상 속의 삶 - 앤드루 포터
나는 배낭을 열고 워크맨을 꺼내 ‘루머스’ 테이프를 넣었다. 그런 다음 사람이 없는 해변으로 걸어가 모래 위에서 팔꿈치에 기대어 반쯤 누운 채 화창한 여름 하늘 아래에서 거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와 데릭 에번슨, 그리고 전날 밤의 장면을 생각했다. 구릿빛으로 그리고 수영장 물로 번들거리는 벌거벗은 남자들의 몸을 떠올렸다. 그때 내가 에로틱이라는 단어를 알았다면 바로 그 단어를 썼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아침 해변에 앉아 서퍼들을 바라보고
의 도입부를 노래하는 스티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 목소리를 처음 듣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데릭 에번슨이 내게 미소 지으며 "이 음악 마음에 드니, 스티븐?"하고 묻던 모습도. 나중에 내가 데릭에게 그 여자 이름이 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메모: 잔잔한 문장속에 인생의 찬란함이 보인다. 페이지: p.71
나중에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나는 자꾸만 내 삶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하나같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 같았던 그들, 학문적 장래가 촉망되던 시절의 아버지는 학문과 학생들을 위해 굳건히 매진했고, 앨리슨은 자신이 지지하고 옹호하는 수많은 정치적 대의에 헌신하며 공공 정책 업무와 소외 계층 사람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 빵과 제빵에 평생을 바친 줄리언 역시 인생 초반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고 그 열정을 따라갔다. 처음에 파리의 여러 빵집을 거치며 공부했고 귀국해서는 필라델피아의 유명 빵집들에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뒤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자기 빵집을 차린 것이다. 전날 밤에 줄리언은 그 일에 대한 애정이 식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었다. 손끝으로 느낄 수 있는 작업, 그 맛과 향, 그 무엇 하나에도 애정이 식은 적이 없다고. 나는 늘 아버지나 줄리언이나 앨리슨 같은 사람들을 선망했다. 나 자신은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목적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대신 나는 언제나 벙커에 숨어 파편을 피하거나 허깨비 같은 기억과 꿈을 좇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생의 절반 정도는 내가 실재한다는 느낌도 없이 살아왔다. 마치 속이 텅 빈 채 내버려진 것처럼. 마치 다른 사람 인생의 찌꺼기가 된 것처럼. 하지만 그 순간 줄리언에게 이런 생각을 말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그냥 차에 시동을 걸고 선글라스를 쓴 다음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곧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질문에 답하자면, 이게 다 뭘 위한 건지 저도 정말 모르겠어요. 줄스 삼촌.” 그런 다음 팔을 뻗어 그의 손을 잡고 꽉 쥐었다. “저도 알면 좋겠네요.”
메모: 자신의 처지를 속이 텅 빈 채 내버려진것 같다고 하는 주인공의 말이 왜이리 날 뜨끔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내 인생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나를 무엇으로 채우려고 했던 걸까. 페이지: p.135
좋은 날이었고, 나는 해변에 있는 앨리슨과 핀을 바라보며 오직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들 뒤에서 바닷물 위로 햇빛이 일렁였고, 저멀리 밝은 주황색 태양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몸이 실루엣으로 보였다. 그 장면은 캘리포니아 이주 초기의 부모님, 그리고 우리가 해변에서 보냈던 그 길고 나른한 날들의 기억들을 불러왔다. 다만 그때 나는 무엇이 어떤 의미인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앨리슨과 핀이 나를 바라보면서 손을 흔들어 나를 부르는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나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내가 내려가 함께 놀기를 바란다는 것을. 그래서 잠시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향해 작은 풀밭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빠르게, 너무 급하게 걸어가느라 두 사람에게 다다르고 나서야,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페이지: p.441
📖 한겨레.txt - 고선경
어차피 떠날 거였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문장에는 어슴푸레한 마음들이 서려 있었다. 사라질지 모르니 오래도록 바라보고, 잃어버릴지 모르니 끝내 이름을 붙여 보려는 마음. 잠시 머무는 방에서는 영원을 생각하기 좋았다.
메모: 허수경의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을 읽은 고선경의 문장
📖 엔지니어링 리더는 매일 무슨일을 하는가 - 제임스 사무엘
- 많은 리더십 문제는 본질적으로 기술 문제가 아니며, 기술적 해결책이 단순하더라도 실제 성공 여부는 이를 실행할 사람들을 정렬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음
- 리더십은 권한보다는 공유된 결과를 향해 사람을 정렬하는 영향력에 가까움
메모: 오호 리더십은 권한보다는 정렬! 출처 링크
📖 No One Is Talking about This - Patricia Lockwood
그녀는 매일 아침 누운 채로 세세한 정보의 눈사태에 휘말려 행복했다. 파타고니아에서 먹는 아침식사 사진, 완숙 달걀로 파운데이션을 바르는 여자의 사진, 일본의 시바견이 펄쩍펄쩍 뛰면서 주인을 반기는 사진, 유령처럼 창백한 낯으로 자신의 멍자국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여자들………… 이 세상이 점점 더 가까이 죄어들어왔다. 인간들을 연결한 거미줄이 어찌나 굵어졌는지 거의 은은한 광택이 나는 탄탄한 비단실 같았다. 아직 하루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그녀에게 이 세상을 보는 것이 허락되었다는 사실은 무슨 의미였을까?
페이지: p.20
💭 후기
이번 달은 앤드루 포터의 『상상 속의 삶』이 유독 깊게 남았습니다. 앤드루 포터의 또 다른 소설집을 작년에도 보고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전개되지 않아도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됩니다. 자세한 묘사가 없지만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곱씹으며 떠올리게 됩니다. 나약하고 중심부 바깥에서 부유하는 인물이 마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슬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합니다. 다시 생각하니 슬프다기보다는 아련한 것 같습니다. 나를 아련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 발 딛고 명료한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걸어도 실제로 내 두 다리의 의지만으로 원하는 대로 갈 수 없고, 진실을 보려고 하지만 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좌절하거나 슬퍼하고 있지만은 않는. 헛된 희망을 가지지 않을 만큼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그것이 나를 아련하게 생각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엔지니어링 리더는 매일 무슨 일을 하는가』라는 글은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주니어를 벗어나 시니어로 가거나 그 이상이라면 더 생각하게 만드는 글인 것 같습니다.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만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결국 리더처럼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가지게 된 것 같기도 합니다.
9월에는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오래 머물며 읽는 날들이 되길 바라며.